사랑이 시작되면 이상하게 노래가 먼저 달라져요
혼자 들을 땐 그냥 흘려보내던 가사도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들으면
갑자기 마음을 콕 찌르는 한 줄이 되죠
그 사람을 만나고, 설레고, 애매한 감정에 빠지고,
조금씩 익숙해지는 그 모든 순간에
늘 곁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어요
오늘은 그런 이야기예요
내 연애의 순간마다
배경처럼 조용히 흘러가던
사운드트랙들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
설렘이 시작될 때마다 반복 재생한 노래들
사랑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건 ‘노래 재생목록부터 정리하는 것’이었어요
그 사람과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듣고,
문득 떠오르는 가사를 저장해놓고,
어느새 플레이리스트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특별히 연애를 시작했다고 딱 정의되지 않아도
그 사람과 주고받는 말,
눈 마주치는 느낌,
아무 의미 없이 나눈 대화들이
갑자기 노래 한 곡과 찰떡같이 어울리기 시작해요
그렇게 내 연애는 늘
음악과 함께 시작되곤 했어요
어느 봄날, 그 사람을 처음 데리러 가던 날
차 안에서 흘러나온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
그때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해요
햇빛은 따뜻했고,
손에 땀이 나고,
‘어색한데 좋다’는 감정이 귀까지 올라오던 그때
또 어떤 사람과의 시작은
볼빨간사춘기의 ‘썸탈꺼야’였어요
이건 뭐 거의 대놓고 나한테 감정 생겼다고 노래로 떠드는 느낌?
괜히 듣다 보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지하철 안에서도 혼자 씩 웃게 되는
그 이상한 병이 연애 초기에 꼭 찾아오잖아요
노래는 이상하게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기억해줘요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심지어 그날 날씨랑 옷차림까지 떠오르게 만드는 마법이 있어요
그래서 전 연애할 때
그 사람이랑 듣고 싶은 노래부터 만들곤 했어요
같이 공유하는 플레이리스트,
우리만 아는 ‘우리 노래’
그리고 마음이 조금씩 열릴 때마다
가사 한 줄씩 슬쩍 보내는 거죠
“이거, 너 생각나서” 하고
설렘은 말로 다 표현되지 않잖아요
근데 노래는 그걸 딱 대신 해주거든요
그러니까 사랑이 시작될 때마다
늘 내 옆엔 노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노래들은
내 연애의 첫 페이지에 꼭 기록되어 있더라고요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흘러가던 순간들
진짜 연애가 시작되기 전,
아직 고백도 안 했고,
확신도 없지만 마음은 이미 그 사람을 향하고 있을 때
그때 듣는 음악은… 감정이 배로 스며들죠
예를 들어
정승환의 ‘이 바보야’나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 같은 노래들
그냥 듣고만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하고,
어디론가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말은 안 했지만
내가 이 노래를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때의 나는
문자 하나 보낼 때도,
대답 기다릴 때도
BGM처럼 잔잔히 깔린 노래 한 곡에 의지했어요
노래가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괜히 위로받는 기분도 들고요
그래서 연애 초반에는
사실 상대방보다 내가 듣는 노래가
내 감정을 더 잘 설명해줬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까? 설마 나만 이러는 건가?”
혼자 수십 번 고민하다가
가사 한 줄 듣고 ‘아, 맞아. 나 좋아하네’ 하고 확신하게 되는 거요
이럴 때 노래는
단순한 감정의 배경음이 아니라
감정을 확인하게 해주는 장치 같아요
어쩌면 말보다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도구였달까요
지금도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사람과의 ‘애매한 그 시절’이 떠올라요
아직 손도 안 잡았고
‘좋아해’ 한 마디도 못 했지만
이미 마음은 기울어 있었던 그 시절
그 시절엔 음악이 모든 감정을 말해줬고
우리는 말 없이도 서로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그때 들었던 노래를 지금 다시 들으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두근두근해요
완전히 끝난 감정임에도
그 멜로디만으로 마음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거든요
사랑이 깊어질수록 잔잔해지는 멜로디
연애 초반의 음악이 두근거림이었다면,
사랑이 깊어지면 노래도 조금씩 잔잔해지더라고요
뭔가 ‘설레는 것’보다 ‘편안한 것’을 찾게 되고
리듬도 느려지고, 멜로디도 부드러워져요
카더가든의 ‘로맨틱 선데이’,
스탠딩에그의 ‘오래된 노래’,
윤하의 ‘우산’ 같은 곡들
함께 있는 시간이 익숙해질수록
이런 노래들이 더 좋아졌어요
둘이 손 잡고 걷는 길,
커피 마시며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
별거 안 해도 함께 있는 그 고요함
그런 순간엔 이런 잔잔한 노래들이 배경처럼 깔려 있어요
이제는 서로 가사 공유도 안 하고
굳이 노래 틀지 않아도 괜찮지만
문득 둘 중 한 명이 흥얼거리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게 되는 그런 노래들
그게 우리 사운드트랙의 후반부예요
연애가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음악은 조용히 물러나는 듯하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 흐르고 있어요
툭하면 꺼내 들을 필요는 없지만
듣자마자 ‘우리다’ 싶은 곡들이 몇 개 있어요
그 노래들 덕분에
다툰 날도, 서운한 날도
다시 처음의 마음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이 무르익을수록
노래는 점점 ‘소리’보단 ‘기억’에 가까워져요
이제는 플레이리스트를 듣지 않아도
그때 그 감정, 그 사람의 표정,
함께 걷던 날씨까지 자연스럽게 떠오르거든요
지금은 헤어진 사람도 있고
여전히 곁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 누구와의 사랑이든
내 마음 한켠에는 늘
그때 들었던 음악이 같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내 연애의 사운드트랙은
사랑의 시작뿐 아니라
그 끝, 그 이후의 감정까지
전부 다 조용히 품고 있는
나만의 작은 감정 기록장이에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노래를 고르고
그 순간을 오래 남기기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하나씩 만들어왔어요
이제는 그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아도,
그 사랑이 끝났어도,
그때 들었던 노래를 우연히 마주하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그 시절의 마음이 조용히 재생되곤 해요
노래는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고 기억해주는 작은 상자
그래서 오늘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먼저 노래부터 다시 듣기 시작해요
그게 내 마음이 사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작은 신호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