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우리 집엔 TV보다 라디오가 더 자주 켜져 있었어요
엄마는 늘 그 앞에서 무심하게 노래를 틀어두셨고
나는 그 곁에서 숙제를 하거나, 놀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었죠
그땐 잘 몰랐어요
왜 엄마는 늘 조용하고 느린 노래를 들었는지
왜 설거지를 하면서 가끔 눈가를 훔치셨는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그 노래들이 내 플레이리스트에 하나둘 담기고 있어요
그때는 그냥 흘러가던 음악이
지금은 나를 울게 만드는 이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엄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들
어릴 적 우리 집엔 늘 라디오가 켜져 있었어요
식탁 옆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항상 엄마가 골라 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 음악들이 엄마의 하루를 감싸주는 배경 같았죠
아침엔 정겨운 DJ 목소리,
점심 무렵엔 트로트나 발라드,
저녁엔 살짝 쓸쓸한 분위기의 곡들
그 흐름을 따라 집안 공기도 바뀌곤 했어요
그때는 그 노래들이
왜 그렇게 조용하고, 느리고, 약간은 울적한 느낌인지 몰랐어요
‘왜 이렇게 옛날 노래만 틀지?’ 싶기도 했고요
근데도 신기하게
그 노래들이 내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어요
엄마가 흥얼거리던 멜로디,
설거지하면서 중얼거리던 가사 한 소절
그때 엄마가 자주 듣던 곡들이 있어요
지금도 들으면
그 순간들이 그대로 되살아나요
🎧 기억 속 엄마의 라디오 플레이리스트
이문세 – ‘옛사랑’
양희은 – ‘하얀 목련’
변진섭 – ‘너에게로 또다시’
최성수 – ‘풀잎사랑’
장필순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이 노래들은 어느 날 갑자기
카페에서, 버스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불쑥 튀어나와요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버리죠
눈앞에 엄마가,
그리고 그때 그 부엌 풍경이 선명하게 떠오르거든요
어릴 땐 그냥 흘러가는 배경음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내 마음을 울려요
엄마의 하루가, 엄마의 감정이
그 음악 안에 있었구나… 싶어서요
내가 듣던 음악이 이제는 엄마가 따라 부른다
시간은 참 재미있어요
어릴 땐 엄마가 듣는 노래가 전부였고
나는 이해 못 할 감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듣는 노래를
엄마가 따라 부를 때가 있어요
요즘엔 가끔 엄마랑 같이 있을 때
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으면
엄마가 “이 노래 가사 참 좋다” 하고 중얼거리세요
그럴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들어요
세대가 다르지만
감정은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엄마는 예전 노래를 들을 때
그 시절 친구들이랑 웃던 얘기,
첫 직장에서 듣던 노래,
아빠랑 연애하던 시절 생각이 난다고 하세요
저도 그래요
20대 초반에 반복해서 들었던
김윤아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아이유의 ‘이 지금’
노리플라이의 ‘끝나지 않은 노래’
그 노래들을 들으면
지금은 멀어진 사람들,
그땐 너무 절박했던 감정들이 다시 피어오르거든요
🎧 나의 플레이리스트
김윤아 – ‘스물다섯, 스물하나’
아이유 – ‘이 지금’
노리플라이 – ‘끝나지 않은 노래’
박효신 – ‘야생화’
정승환 – ‘너였다면’
엄마는 옛날 감성을 여전히 좋아하시지만
요즘 제 노래도 "말 참 곱다"며 귀 기울이세요
서로의 음악을 교환하다 보면
우린 다르지만 묘하게 닮았다는 걸 느껴요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엄마가 듣던 노래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고
엄마는 내가 듣는 노래 속 외로움을 느끼게 되죠
그게 이상하게 따뜻해요
음악으로 우리는, 세월을 건너 만나고 있어요
그 시절의 공기까지 기억나게 하는 멜로디
요즘엔 라디오를 따로 켜는 사람도 드물어요
스마트폰으로 듣고 싶은 음악만 찾아 듣는 시대잖아요
근데 이상하게도
가끔은 '흘러나오는 음악'이 더 진하게 와 닿을 때가 있어요
마트에서, 미용실에서, 지나가던 카페에서
어릴 적 엄마가 듣던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잠깐, 정말 잠깐이지만
그 시절의 공기, 향기, 온도까지 떠오르는 순간이 있어요
그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감정이 담긴 기억이에요
엄마가 나를 머리 감겨주던 주방,
반찬 투정 부리던 식탁,
방학 때 라디오 들으면서 빈둥거리던 오후
그 모든 장면이
하나의 멜로디와 함께 뭉쳐서
갑자기 지금의 나를 툭 건드려요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노래가
이젠 나를 울게 만들기도 해요
‘엄마는 그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냥 흥얼거린 줄 알았는데
그 노래 안에 감정이 꽤 많이 담겨 있었구나’
어릴 땐 미처 이해 못 했던 것들이
이젠 음악을 통해서 하나씩 보이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엄마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
라디오를 일부러 틀어놓기도 해요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면
마음속에서 조용히 엄마를 불러보게 되거든요
음악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노래는 여전히 남아서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내 마음속 엄마에게
다시 말을 걸어줘요
음악은 단지 멜로디와 가사의 조합이 아니었어요
그 안에는 누군가의 하루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엄마가 듣던 그 노래를 이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시간이 만들어준 아주 조용한 연결이었어요
세월이 흘러도
엄마가 사랑하던 멜로디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고
이제는 내가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 시절 엄마의 감정을 따라 불러보게 돼요
그 음악들은 여전히
라디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마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되겠죠
그게 음악이 가진 힘이에요
지나간 시간을 조용히 꺼내주는
가장 따뜻한 기억의 방식이에요.